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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01
  • 강원신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1221

 

 

 

                                                                                                                                                  작가 김성수

 

 

강원신(姜敬玉)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87)
◆ 사망년월일 : (1977)
◆ 본적 : 평안남도 기타 영유골
◆ 주소 : 미국 캘리포니아주

◆ 운동계열 : 미주방면

◆ 애족장(1995년)

 

 

 

 

<공훈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1904년 후일 미주(美洲)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총회장을 역임하는 강영승(康永昇)과 결혼한 뒤, 1905년 5월 도릭선편으로 남편을 비롯한 그의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하였다.

 

하와이 도착 후, 가파올라 사탕농장과 에와 사탕농장에서 힘든 노동을 하며 남편의 학업을 뒷바라지하였으며, 1913년경 남편이 미본토 시카고로 건너가 법학박사과정을 밟게 됨에 따라 시누이 강혜원(康蕙園)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뉴바 지역으로 이주하여 포도농장에서 시간당 15센트의 노임을 받으며 남편의 학업을 뒷바라지함과 동시에 여성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19년 3월 2일 다뉴바 지방에서 강혜원·한성선·김경애 등과 함께 신한부인회(新韓婦人會)를 결성하고 회장으로 선출되어 한인 부녀자들의 민족정신 고취와 미주 항일민족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의 민족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또한 동년 5월 18일 미주 각 지역에 산재한 한인부인회의 운동역량을 집중 강화하기 위해 새크라멘토의 한인부인회(韓人婦人會)와 합동발기문을 선언함으로써 각 지역 부인회의 통합을 촉진시키는 한편, 8월 2일 다뉴바의 한인장로교회에서 미주내 여성단체인 다뉴바 신한부인회, 월로우스지방 부인회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인회 합동발기대회를 개최하고 미주 한인사회의 통일운동기관인 대한여자애국단(大韓女子愛國團)을 창설하였다.

 

대한여자애국단 창설 후 재무 및 제3대 총단장을 역임한 강원신은 동지들과 함께 매월 3달러의 단비(團費)를 수합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금하여 외교·선전·군사활동을 후원하였으며, 국내에 각종 구호금을 수합하여 송금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1천 달러, 임시정부 공복위로금으로 5백 달러, 상해 독립신문사(獨立新聞社)에 3백 달러,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에 군축선전비로 5백 달러, 신한민보사(新韓民報社) 식자기 값으로 5백 달러, 간도(間島)동포 기근구제금으로 67달러, 중국 송미령(宋美齡) 여사의 군사위로금으로 370달러, 멕시코 한인 동포의 하바나 이주비용으로 동정금 40달러, 쿠바 맛단사스 지역 한인구제금으로 55달러, 수재민 구제금 368달러, 본국 수재민 구제금 172달러, 본국 소년갱생운동에 55달러, 황은순고아원에 58달러, 2차 대전시 미군적십자사에 570달러, 로스앤젤레스 출정군인무도회(出征軍人舞蹈會)에 194달러 등 총 46,298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모집 송금하여 민족운동단체를 후원하였다.

 

이러한 활동 외에도 미주내 한인 동포 자녀들을 대상으로 민족교육을 실시하였고,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적극 전개하는 등 조국의 독립운동에 일평생을 바쳤다.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내용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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