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상화 갤러리
- 2021-12-29
- 고수복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572
작가 김선태
고수복(高壽福)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911) ◆ 사망년월일 : (1933-07-28) ◆ 본적 : 함경남도 정평 ◆ 주소 : 京畿 高陽 漢芝 新堂 中東正 57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애족장(2010)
<공훈록> 고수복은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공립보통학교 졸업하고, 1931년 9월 종방방직회사(鐘紡紡織會社) 경성제사공장(京城製絲工場)의 직공으로 입사하였다. 1932년 1월 말 정길성(丁吉成), 김응룡(金應龍) 등과 협의하여 좌익노동조합준비회(左翼勞動組合準備會) 결성하기 위해 경성부내 각 공장으로 분담 활동을 하였으며, 3월 하순 경성부 팔판동에 거주하는 강응진(姜膺鎭)의 집에서 정길성, 김응룡, 권오경(權五敬)과 회합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위한 준비단체인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左翼勞動組合準備委員會)를 결성하였다. 준비위원회의 총책임자에 권오경, 조직부 책임에 정길성, 재정부 책임에 김응룡, 선전부 책임에 고수복으로 부서를 분담하였다. 1932년 8월 중순경 문태화(文泰和), 공원회(孔元檜), 이만규(異晩圭) 등이 중심이 되어 적위대(赤衛隊)를 결성하였는데, 적위대는 그 하부에 5개의 조직체를 두고 지도,통제하는 최고지도기관이었다. 고수복은 1932년 9월 적위대의 예하 기관 중의 하나인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의 선전부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동대문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후 10월 18일 적위대사건과 관련하여 구속되었던 고수복 외 9명은 동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치고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1933년 7월 19일 예심에 회부되어 조사를 받다가 병보석으로 출옥하였다. 고수복은 출옥 후 연건동의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중 1933년 7월 28일 옥고의 여독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京高秘 第6968號, 秘密結社 赤衛隊事件 檢擧에 관한 건(1932. 11. 18) 京東警高秘 제2985호, 秘密結社 赤衛隊事件 檢擧에 관한 건(1932. 10. 8) 東亞日報(1932. 10. 20, 10. 30, 1933. 7. 29) 京東警高秘 제2985호, 朝鮮共産黨의 建設을 目的으로 하는 秘密結社 赤衛隊事件 檢擧에 관한 건 (1932. 10. 15) 京東警高秘 제2383호, 保釋出獄者 死亡에 관한 건(1933.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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