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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31
  • 박원희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349

 

 

작가 박태철

 

 

박원희​​(朴元熙)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98-03-10​)
◆ 사망년월일 : (1928-01-15​)
◆ 본적 : 서울 鍾路 通義 28​
◆ 주소 : 서울 桂 125​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애족장(2000​​)

 


 

 

 

 

<공훈록>


서울 사람이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철원보통학교의 교사로 3년간 재직하다 일본에 유학하였다. 

 

귀국 후 여성운동에 뛰어들어 남편인 김사국(金思國)이 주도한 서울청년회계의 청년당대회(靑年黨大會)에 참여하였다.

 

1923년 김사국이 간도 용정(龍井)에 동양학원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항일선전문을 배포하고 폭탄으로 일제 기관의 파괴를 계획하자 이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으나 임신 중이었으므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귀국 후 1924년 5월 서울에서 여성동우회(女性同友會)를 창립하면서 여성의 권익향상과 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이어 1925년에는 경성여자청년회(京城女子靑年會)를 주도 조직하고 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동회는 일요강습회를 개최하여 여성들에 대한 사회교육을 실시하는 등 여성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4월에는 중앙여자청년동맹(中央女子靑年同盟)의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청소년 남녀의 인신매매 금지, 만 18세 이하 남녀의 조혼폐지, 청소년 남녀직공의 8시간 이상 노동야업 폐지, 무산아동 및 산모의 무료요양소 설립’ 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1927년 4월 당시의 여성운동가가 망라되어 신간회(新幹會)의 자매단체로서 근우회(槿友會)를 조직할 때 창립준비위원으로 참가하여 회원모집의 임무를 맡았으며 이후 교양부의 책임자로서 계몽강연에 힘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여성의식 향상과 민중계몽에 힘쓰던 중 그는 병을 얻어 30세의 나이에 서거하였다. 

 

그의 장례는 사회단체연합장으로 1,000여 명의 각계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433面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411·412·450·451面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52面

연변청년운동사(연변인민출판사, 1988) 59面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396面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8卷 438·441·442·475·696·717面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0卷 938·939·942·944面

東亞日報(1926. 1. 8, 8. 13, 1927. 4. 17, 4. 18, 4. 19, 4. 23, 4. 28, 5. 25, 5. 31, 7. 2, 7. 8, 10. 14, 11. 11, 1928. 1. 7, 1. 9, 1. 10, 1. 13, 2. 10, 2. 14, 2. 15, 2. 21,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