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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06
  • 이의순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382

 

 

작가 최라윤

 

 

이의순​​​(李義橓)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95)
◆ 사망년월일 : (1945-05-08​​)
◆ 본적 : 함경남도 단천
◆ 운동계열 : 중국방면

◆ 애국장​(1995)

 


 

 

 

 

<공훈록>


함남 단천(端川) 사람이다.

이동휘(李東輝)의 차녀이며 남편은 상해지역의 독립운동가 오영선(吳永善)이다. 1902년경 부친이 경기도 강화도(江華島) 진위대장으로 활동하게 되자 할아버지 이발(李發), 언니 인순(仁橓) 등과 함께 7세의 나이에 서울로 이사와 성장했다.

 

1911년 가을, 서울을 떠나 성진(城津)에서 살다가 부친이 만주로 망명하자 부친을 따라 두만강을 건너 국자가(局子街)로 이주하였다.

 

동년 화룡현(和龍縣) 명동촌(明東村)에 있는 민족학교인 명동학교의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후 근방의 마을마다 야학을 설치하여 운영하는 한편, 부흥사경회(復興査經會)도 개최하여 이를 계기로 1919년 명동여학교를 병설하는 등, 간도지역 여성 민족교육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1918년 가을에는 부친의 지시에 따라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한 이의순은 그곳 신한촌(新韓村) 삼일여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당시 이곳의 애국지사 채성하(蔡聖河)의 맏딸 채계복(蔡啓福)과 같이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10월 당시 회원은 50명이었다. 한편 이의순은 미래 독립전쟁에서 활동할 간호부의 양성을 위하여 적십자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19년 부친이 상해에 가서 임시정부에 참여하게 되자 이의순은 1920년 할아버지 이발과 상해로 이주하였으며, 그곳에서 오영선과 결혼하였다.

 

그 후 이동휘가 임시정부와 결별하고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오게 될 무렵 이의순은 상해에 계속 남아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8월 11일 이의순은 인성학교(仁成學校) 교장 김두봉(金斗奉)의 처 조봉원(趙奉元) 등과 함께 기존의 여성단체 조직인 상해한인부인회를 개조하여 보다 급진적인 조직인 상해한인여성동맹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상해지역 여성조직의 분열을 가져오는 점이 있어 김구(金九) 등의 중재로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상해여자청년회를 조직하였는데 이 때 창립대회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이역 땅에서 작고하였다.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92·205면 무장독립운동비사 44면 조선민족운동년감 56면 한국학연구(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3. 7) 제5집 별집, 리동휘 성재선생(리영일) 184·188·204·289∼290·293면 조선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657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0권 882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351면